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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1책_동아시아,해양과 대륙이 맞서다_9장 표류민, 새로운 세상을 본 사람들>

1.조선왕조가 지배하던 한반도에서는 원하는 물산이나 우호적인 정권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중국과 일본의 근세 역사와 비교해볼 때 이들의 흔적이 상대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2.임진왜란 당시 포로로 필리핀에 끌려간 사람들을 제외하면,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필리핀 지역의 언어를 익힌 사람은 문순득일 것이다.
-조선 중후기 시절에 필리핀과 어떤 방식으로든 접점이 있었고, 필리핀 지역 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놀랍다.

3.문순득이 표류했던 유구ㆍ마카오ㆍ청나라의 문헌에서도 문순득에 관한 기록이 확인된다.
-그 시절 한국인의 등장은 다양한 인종과 국가를 접했던 지역에서도 꽤나 생소한 일이었던 것 같다.

4.외국인을 후대함으로써 자기 나라가 국제무역을 위한 공정함과 신뢰를 잘 지키는 나라임을 외국에 보이고자 하는 무역 국가 유구의 특성을 보여준다.
-앞서, 네덜란드동인도회사가 조선왕조가 지배하던 한반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역사를 배우면서도 아쉬웠던 부분.

5.여러 나라 사람이 섞여 살면서 외국인도 자유롭게 상거래를 할 수 있는 루손의 경제적 풍토는, 상업이 천시 받고 외국인과의 교류가 거의 없던 조선 출신의 문순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6.문순득은 당시의 국제적인 표류민 귀환 시스템에 따라 이동했다.
-이국인의 표류가 유라시아 지역에서 흔하진 않지만 어느정도 일반적인 일이었음을 보여줌.

7.표류기는 단순히 모험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흔히 가볼 수 없는 바깥세상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소스북(sourcebook)으로서 기능했다.

8.문순득의 경험은 몇 년째 조선에 머물던 루손 사람을 귀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고다유의 경험은 도쿠가와막부가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계기가 됐다.
-조선왕조가 문순득의 경험을 중히 쓰고 대비했다면, 서양 열강에 고통받았던 시기를 더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9. 《표해시말》은 문순득의 표류를 전하는 유일한 문헌이자 한국 문화에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한 ‘해양문학’의 귀중한 사례라는 정도로 이해돼왔다
-한반도는 3면이 바다인 지리적 특성상 해양에 대한 문학이 많아야 정상으로 보이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은 농사만 중시한 풍토탓이 었을까.

10. 하멜이나 1801년의 필리핀 루손 표류민은 한반도가 유라시아 동해안의 국제적 네트워크에서 외곽에 위치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완전한 쇄국이나 대비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네트워크의 중심에 다가가는 노력도 없었던 외곽의 애매한 위치가 조선에 대한 정보만 유출하고 서구 열강 침략을 받았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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