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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스라면 조커를, 노라면 한 장씩 집은 카드를 이 상자에 넣으면 되네. 둘 다 조커가 나오면 이번 얘기는 그대로 진행하는 거고, 다른 카드가 하나라도 나오면 우리들 모임은 여기서 끝이네.
2. 다쿠야는 ‘브루투스’ 쪽으로 다가가 그 금속 몸체를 만졌다. 그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존재였다. 이러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다쿠야는 웃음을 흘렸다. 편안한 마음에서 오는, 이유 없는 웃음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육친의 느낌이 이런 걸까. 그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상상해보았다.
3. 다쿠야는 커피 잔을 거칠게 내려놓은 다음 계산서를 들고 서둘러 카운터로 갔다. 지갑에 1만 엔짜리만 들어 있는 걸 보고 혀를 찼다. 잔돈을 받을 필요 없이 커피 값을 준비하라는 것도 철칙 중 하나였다.
4.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운 범인이, 일부러 멀리 돌아갔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자네가 말한 대로, 빠져나가려면 가와사키야. 그럼 이 영수증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달린 거지?”
5. 다쿠야는 만년필을 제자리에 놓고 책장에서 잔과 시바스 리갈 병을 꺼냈다. 그리고 잔에 3센티미터 정도 술을 붓고 잔을 든 채 침대에 걸터앉았다. 한 모금 마신 뒤에야 자신이 아주 무신경한 행동을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시바스 병은 열린 상태라 독을 넣을 수 있고, 잔 안쪽에도 독을 바를 수 있다.
6. “전부 대출이었습니다. 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고, 보너스를 받으면 갚거나 몇 개월에 걸쳐 나눠 냈습니다. 매달 그 대금으로 월급의 수십 퍼센트가 나갔으니 돌려막기에 급급했던 셈이죠. 그런 자각이 본인에게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7. 이상한 장소라고 한 것은, 다쿠야 같은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실험 동 뒤에 있는 창고 안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사용 기한이 끝난 기계나 프로젝트가 중단되어 미완성인 채 버려진 시험 제작품들이 있었다. 모두 폐기를 기다리는 잡동사니들이다.
8. 객관적으로 보면, 처음부터 작업자의 조작 실수라고 결론을 내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안전과는 작업 순서의 기재 항목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하게 잘못을 지적한 반면, 로봇의 능력이나 사양에 대해서는 눈에 띄게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9. “사람들이 봤을 때, 아! 이건 무슨 그림이네, 예쁘네……, 그런 말들을 못하게 만드는 그림이 좋아. 이 그림에 대한 화제는 피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게 최고야.”
10. 도시키는 얼굴을 찡그린 채 한동안 창밖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무네가타에게 지시했다.
“어쩔 수 없지. 그 녀석은 버린다. 호시코와의 관계를 모두 끊게.”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무네가타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